나에게 좋은 보상을 얻고자 하는 욕망인 포지티브 모티베이션 만큼이나
네가티브 모티베이션은 인지과학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어떻게 보면 생명유지랑 관련이 있는 것은 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떠오른 엉뚱한 생각.
가끔 우리는 왜 피해야 할 대상인지 알면서,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그 대상이 잠재적인 해를 줄 수 있는 대상이기는 하되, 치명적이지는 않은 경우인 것 같다.
예를 들면 공포영화를 볼 때, 심장 박동이 솓구치고 아드레 날린이 분비되지만
나는 안전한 스크린 밖에 나와있다는 잠재적인 안전장치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일종의 머리 속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가 그 대상을 이겨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 하여 생각을 하면, 점점 처음에 받았던 충격에서 단련이 되어간다.
그리고 앞으로 행해질 잠재적인 위험도 내가 예상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벌어진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다시 가서 다치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바다에 나간 어린 나비를 그린 시처럼 애초에 정복 할 수 없는 대상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는 그 대단한 잠재적 해를 가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이기고자 하는 욕망, 혹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계속 도전하게 하는 그 것 자체거나
그 욕망을 접어두고 겁쟁이라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상대를 타자로 인정하는 포기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예술이 생겨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을 옮겨 내가 지배할수 있는 캔버스 위에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완성된 작품이 감상자에게 충격을 주며 두려움을 줄 지라도,
화가는 그 대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by Friedrich, Caspar David
오늘 나의 작은 도전에서 나는 또 다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또 다치게 될 줄 알고있었는데 순간적인 만용이었다. 불을 만만하게 본 불나방이었다.
오랜만에 백경을 찬찬히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불편함의 대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경외로운 대상이 아님을 깨달아야겠다.
그렇게 조금은 씁쓸해하고 싶어진다.
진짜 두려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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