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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윈도우 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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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윈도우 보기/감추기
이전 12345 ... 7다음

지금 살고있는 방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2007년 8월 말쯤일텐데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기억이 없다.
그동안 7명의 룸메이트가 이 방을 지났던 것 같다.
이사를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이 반복된 기억으로 남아 기억이 흐릿해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4년 반만의 이사라 일이 꽤 된다.
항상 단촐하게 들어와 나가는 꿈을 꿨었는데 다음엔 좀 더 간편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짐들을 보니
학생으로서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그리고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그동안 내가 나로써 결정되고 만들어 지는 것들이 무었이 있었는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항상 나는 나였겠지만, 이제서야 내가 된 느낌
30즈음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이 아닐까 싶다.
작년엔 20대가 끝난다는 것에 견디기 힘들었던 반면
지난 1년동안 계속하여 나이를 인식하고 지낸 것도 아닌데
올해는 아무런 감흥 없이 일상으로서 연말을 보냈다는 것이 신기하다 생각하며 푹 잠을 잤다.
 

2012/01/05 04:46 2012/01/05 04:46
예전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면 주인공 중 하나가 외계에 자신의 종족이 있다고 생각하고,
친구들 나 언제 데리러 올거야? 하는 ET에서 모티브를 받은 듯한 말을 하는데

어렸을 때 보면서도 유치한 설정이다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막상 이 곳에 있으면서
그것보다 사실은, 아마도,
나이 들어 나라는 존재가 생겨 가면서
비단 이곳은 아니지만 어딘가 내가 속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의 끈이 위로가 된다.

이러한 감정이 그리고 꽤나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는 말도 안되던 것이 슬픈 동화가 되는게 어른의 삶인가?

외로울 수는 있어도 넌 혼자가 아닐 것이다라는 얘기를 어떤 분이 어떤 학생에게 해주었다는 말을 보면서
그 사람은 힘들 때 그 말을 생각하면 항상 따듯함을 느낄 수 있겟다는 생각을 한다.

논문 속으로 파고 들어가 앉아있는 수 밖에
왠지 누군가가 가장 열정적일 때의 결과물인 논문에 공감 할 수 있게 되면
저자가 피워 놓은 모닥불을 쬐고 앉아있는 객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서사 이론 때 배운 주인공의 여정이라는게 있는데
제일 중요한 마무리 여정이 집으로의 귀환이다.
나의 지금의 여정이 뭔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되, 또 좀 더 내 세상을 찾는 여정이길 바란다.
2011/06/29 13:25 2011/06/29 13:25

달리기를 할때나 혹은 자전거를 탈 때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든다.

우선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고, 몸을 움직이고 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 어딘가를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정해지지 않은 목표점에서 방향을 바꾸고 돌아오는 시점이 주는 상징성을 생각한다.

오늘 생각보다 멀리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것의 실천

목표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며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최선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무엇을 얻어야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것

또한 앞으로의 계획도 목표로서가 아닌 새로운 과정으로서 아주 큰 그림으로 바라보게 되는 조금 신선한 느낌

정말 중요한 것은 지켜나가기

2011/06/27 01:56 2011/06/27 01:56

뒤적뒤적 Today's Ravic

새로운 주제를 찾으려고 기존 연구들을 찾다보니 그나마 가장 최근에 된 연구가 1985년인가 싶다.

아마 계속 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키워드가 또 생각나면 아마 상당히 최근에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걸 발견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거의 1주일전에 나온  뉴로사이언스 논문이 쏟아지는 시점에

미술에 대한 1985년이란 시간에 쓰여진 논문은

인터넷을 통해 가상의 다락방에 접속해, 먼지 가득 쓴 책을 찾아 연 느낌이다.

내가 한 연구도 한 20년뒤에 누군가에게 또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수 있을까?
2011/06/08 01:02 2011/06/08 01:02
예전엔 새로운 음악을 찾고 듣고 또 아무도 아직 못봤을 것 같은 영화를 찾아 보는 일이
일상의 재미였고 거리낌 없는 행동이었으며
그렇게 내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와도 그 시절의 나를 공유하지 못하고
그 문이 닫혀 져 가고 있는것 같이 느껴진다.

이제 새로 나온 음반, 모르는 음악가의 음악을 처음 들어보려는 노력에 힘이 들어간다.
플레이 리스트에 쌓인 곡 수만큼 무게가 느껴지는것 같이 속이 불편하다.
생각을 유발할지도 모르는 영화가 피곤하다 느껴지고
영화 감독의 서사를 가만히 앉아 따라가 주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집중과 몰입에서 나를 끄집어 낸다.
마른 감수성에는
당장 먹기 좋은 것만 반목해서 먹고 중독이 된 정키같이
감상을 위한 음악이 아닌 오늘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배경음악만을 걸어둘 뿐

'그냥 요즘 바빠서 그런거지 나의 시기가 닫힌게 아니야'
라고 스스로 덮고 덮고,

아마도 반쯤은 진실, 이렇게 넘어간다 치면 그때의 나는 누굴까?

아마 원래부터, 무엇을 아는가 보다 얼마나 아는가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보다 얼마나 좋아해 봤나가 그 사람을 말해줬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급하게 돌파구를 마련해 본다.
2011/05/26 01:12 2011/05/26 01:12

Today's Ravic

민감한 자에게 여러모로 적응의 시기

내리 쬐는 빛이 마음같지 않아 쨍하니 부담스럽고

날은 좋으나 왜 좋지 하는 삐죽한 마음이 무심히 든다.

나는 날이서 나날이 예민해 어떤 때보다 둔탁하다

버티고 고와야 탈피를 할 시기가 올 것인데
2011/05/16 19:19 2011/05/16 19:19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본능이자 연구자로써의 본능이기도하다.
옆에서 누군가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며
이 사람이 어떤 동기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곤한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틀릴 가능성 또한 많다.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보니 생각보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선택 하게 되는
정말 그사람의 본질적인 결정이 별로 되지 않기때문에 몇몇 사래가 반복 되는 것을 보고 사람을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누군가를 판단하고 왠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 판단을 강화해 가곤한다.
공감 능력은 그럴 때 그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마치 책을 읽는것 처럼 이야기 해주는데 도움이 된다.

요는
그것 때문에 가끔 아프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본 모습이 내가 몰랐던게 아닐가 싶어지면
마치 스릴러 영화에서나 볼것 같이 갑자기 과거의 그의 행적이 떠오르면서
아 이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었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뭐랄까, 비극적 소설을 읽었을 때 처럼
마음이 아파온다.

예술을 사랑한다는것도 어찌보면 기만일까
나에게 공감을 할 때, 가장 기분 좋게 읽히는 것은 예술이다.
누군가의 가장 인간적으로 약하되, 강할 수 있는 그건, 치밀하게 살아온 깊은 농도의 한방울 같은 것을 시음하는 기분인 것이다.
반면, 사적인 공간에 침입을 한것 같은 마음이기는 하나
상업적 속성을 가지고 예술은 그사람의 이주 부분이며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다.
무대에서의 단편일 뿐이며
고도의 연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예술과 예술가 사이는 솔직할것이란 환상을 아직 가지고 싶기는 하다.
기만이 통할 정도로 세상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라고 생각해 보고 싶다.

예술은 읽을수록 행복해 지는 가상 속의 무엇같고
현실 속의 인물들은 가까울수록 무서워져
가상으로만 계속 들어가고 있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단 것만 먹으려는 애들 같은거겠지
2011/04/07 12:54 2011/04/07 12:54
연락이 가끔 닫는 말이 없는 아주 친한 친구는 개인 하늘의 북극성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표류하다 스치기라도 하면, 잊고있던 과거의 나를 불러다 준다.
흘러다니는 지금의 내가 어디서 오고있었는지 알게 되는것 같다.
그리고 붙어있을 때도 그랬듯 내가 파악하는 정도로만 널 알 수 있는 정도에서
위안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 같다는게 손에 안잡히는 무엇같지만
아쉽다기 보다는 인간의 본연이 그런가 싶어지고
어디서든 어떤 모습의 기록들을 남기고 있는 것에서
나는 과거의 너와 현재의 너 그리고 다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시간이 이어져 있다는 잘 잊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2011/03/12 17:29 2011/03/12 17:29
자심감이 생겼다 없어지는걸 보면
그건 참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 영향력을 생각하면
무작정 가지고 있다고 믿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훌륭하고, 젊고, 똑똑하고 성과도 잘 내며, 그러니까 인지 모르겠지만 열정적이고, 성격도 좋아보이는(이건 후광 효과일듯) 연구자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없거나 이와 정반대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오히려 아직 여기에 욕심이 많구나 하면서 낙천적인 생각을 좀 해본다.

내가 잘하는 일을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 않을가 싶다가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인걸 보면
대체 난 어디서 부터 잘못 된건가 하는 자괴감에도 한 번 빠져본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니 뭐 그렇겠지만

그래도 살면서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신나서 세상에 그것만 보이게 살고 싶다.

이 일이 그런 일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
그렇다면, 아 여길 나가면 뭘 해야 한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시작해 놓은 연구들이 있으니 마무리 하고
체계적이지 못하고 겅중겅중 뛰어온 나의 과거가 편해질만큼
밑도 끝도 없는 공부를 하고싶다. 또 연구를 하고 싶어질 때까지
2011/03/09 21:02 2011/03/09 21:02

요 며칠 일하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전에 조금 놀면 좋겠다 생각하던중에 반가운 저녁모임

몇가지 듣고 느낀 점.

앞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하니 다른 선배 연구자분께 이런 말을 들으셨단다.
공부가 목적이야 학위가 목적이야?
공부입니다. "그럼 대가에게 가서 배워야지"
공부할때 제일 중요한게 뭔가요?
"자신에게 솔직해야지, 자기가 보고 어디까지 갈 수 있겠다고 생각이 서야지"


인생에 재미있는 일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조금 자기 고집을 버리고 순리대로 일을 맞겨야 한다.
특히 자신감이 없는 완벽주의자들을 위해
100%는 만들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기회는 항상 내가 100%일 때 오는 것이 아니다.
80%만 되어도 괜찮을 때가 있다.
80%를 내놓고 또 다음을 바라보는 거다.


남들보다 원래 좀 더 잘 할수 있는 부분이 있다거나, 혹은 남들보다 더 시간을 투자하는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느끼는 자기 기준을 당연히 높을수 밖에, 실망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건방지게 들릴 수 잇는 말이었지만, 세상이 원래 불평등한걸 안다면
그 실망도 무슨 말인지 알수 있지 않은가, 그건 열정이지
왠지 나는 그분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기에 공감한다.

2011/02/17 23:22 2011/02/17 23:22
비로소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든다.

원래 연말은 뱀을 새고 술을 마셔야 다음에 새해가 오는것이었나? 요 몇년간 31일에 잠만 잘자다가 새해가 오는것이 실감이 안났는데 어제 모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꼬박 밤을 새니 기분이 외려 상쾌해졌다.

항상 문제가 있을때는 무언가 내려놓고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걸 알게되면서 왠지 모든것에 도전 할 수 있을 것 같았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간과 끈기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에게 시간이 없어지면서 불안해 진거다.

그 불안 덕택에 시간과 끈기만 들고 가던 나에게 어느덧 무엇이 더 많이 생겨있었나 보다.
어제 긴 대화 속에서 내가 또 무엇을 들고 가고 있었는지 알았다.
시간에 대한 집착으로,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것 같다.
과거에 대한 선택에 후회 이런 것과는 조금 다른 시간 그 자체에 대해 나는 집착이 생겨버렸던 것 이다.
어제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아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뭐든 다 그 과정이 있어야 익고 혹은 곪아 터지고 하는가보다.
무엇을 내가 들고 고통받고 있는지 알려면 그 고통을 다 받아봐야 아는가보다.
긴 고통 속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에 대한 다짐 같은게 생긴다.

30년을 살아보고 알게된건 앞으로 더 힘들거라는 것
사는게 참 우울한 일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이게 위안일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다. 그들에게 세상은 항상 그들의 기대보다 조금씩 더 밝다.
그러니 이제 그만 우울하려면 세상을 향해 투쟁하는 수 밖에 없다.
행복이라는게 어떻게 보면 참 투쟁하고 쟁취해야 하는것인가 싶다.
지금도 사실 나는 비 이성적인 행복에 대한 집착이 우스워 보인다. 혹은 우스웠으면 좋겠다고 여유를 부리고 싶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매시간 매초 조금씩 더 냉정해져야 하는 이유가 객관적인 행복에 대한 삶의 투쟁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싸운다는 생각에 독이 많아졌다.
농담으로 시작되었던 독들이 이제 진심이 되어 나를 집어 삼킬정도가 되었다.
나는 어떻게 보면 싸우는데 자신이 있었다. 싸움의 대상이 조금은 분명해진 느낌
오랜만에 좀 투지가 생긴다.

.

2011/01/18 19:10 2011/01/18 19:10
조심스럽게, 이제 연구실에 남은 사람은 나 하나라고 어느정도는 말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은데
나간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이듯,
나로서도 이건 새로운 시작으로 몰아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우리는 부서지는 배에서 각자의 조각을 나눠 가지고 살아서 만나기로 했다.

난파같은 시작, 원하지 않는 새로운 시작에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준비는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겁에 질려있다.

다른 것보다 우선은 더 움츠러 든다.
좀 더 철저하게 혼자하는 것, 외로워 지는 것에 익숙해져애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오래 혼자였지만 더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야 이걸 끝낼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우연한 산물임에도,
키치적인 운명론 같은 비장함이 들어 조금 웃겼다.
조금은 혼자하는 것에 겁을 먹고있다는 것이, 오히려 조금 위로가 된다고 여유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은 혼자 하는게, 나를 위해서도 유일한 방법일지 모르겠다.
사람에 치이고 지치는게 여기선 어느 때 보다 많다.

발전을 위한 헤어짐들임을 각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면에서 헤어짐을 촉진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벌벌 떨고 있는거다.

우선, 이번 주말에 다들 보내고 혼자 있기로 했다.
혼자 하는 시간의 내실을 다지는 기간도 필요하고,
같이 있는 시간에 메달리게 되지 않도록
정신부터 좀더 차가워지기로 했다.

여기에 쌓으러 왔는데 항상 버리고 내려놓고 떼어놓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뭔가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다들 나는 참 대단하게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이 서러운 답답함이 언제 사라질 수 있을까?
이번 겨울 유난히 춥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Anselm Kiefer, Dein Haus ritt der finstere Welle, 2006 (左)
Peter Doig Reflection – What does your soul look like, 1996 (右)

2011/01/08 16:57 2011/01/08 16:57
태그 :
기숙사 앞에 지인이 음료수를 하나 들고 정신을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논문 썼다고 말을 하는 얼굴과 눈빛이 이미 제 상태가 아니다.
같이 일하는 교수분이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게다가 그 외에 사건도 있을텐데, 말은 안했지만 얼마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었다.
지저분한 또 이야기들..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 자기의 실험도 부족한것 같고 논문도 부족한 것 같단다.

전에 이미 논문으로 써보았던 연구지만,
더 정확한 연구를 하겠다면서 다음 퍼블리슁을 노리고 있는 것.
그러던게 얼마 전인데 자신의 논문이 벌써 보잘것 없게 느껴졌던 거다.
그래서 다시 쓰고 고치고 하는 중인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 이런 경험은 물론 괴로운 일이지만
그 얼마 사이에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너 같은 사람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했다.
그 화남과 답답함이 너의 힘이 될거라고 했다.
나도 전에 이렇게 괴로워 하던 때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자신의 기준에 자신의 연구가 부족한 것 같이 느껴져
답답함을 느끼고, 우울해 지는 것
그건 열정이다.

밖에서 보기에 KAIST사람들은 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주변에 사실 이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실 귀한 존재다.
처음 몇 번은 해볼 수 있겠지만,
정말 내던져 본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오히려
또 혹은 더 멀리 자신을 파괴하는게 무엇인지 안다.
무엇을 계속 하려는 시도는 점점 몸사려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무엇을 하고있던 간에
지금 내가 마치 험준한 산을 오르기 위한 중턱쯤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긴장을 놓치 못하는 거다.
그날 등산을 못하더라도,
내 언젠가 저길 올라야 한다는 반은 압박, 반은 스스로를 다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이 말이다.
올해부터는 스트레스에 망가지는 것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 하고산다.
언젠가 저걸 넘으면 좀더 사람사는거 같이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전에 정신을 차려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간에 넘고 보는 산이어서는 안된다.
산은 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넘었는지가 중요하다.

선배 연구자들을 보면 그들만의 산을 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산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오히려 누군가에 등에 업혀있기만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화가 날 정도로 질투가 나며,
논문에서 감동을 받는 연구들을 보면
왠지 그 저자들은 베이스캠프의 삶이 끝날거라는 독을 품고 산을 올랐던것 같지않다.
오히려 산을 좀더 쉽게 즐겁게 올라갈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들을 잘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런것이 학풍이고, 제도적인 장치라 가능한 경우가 많다.
아무튼 나중에도 좋은 연구를 계속 내놓는것은 이게 비결인듯 싶다.

뭔가 이룬다는것, 세상에 뭔가 내놓는다는게
어느정도는 다 그렇게 자기를 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어느정도 되어야 자연스러운건가?
자신을 내던지는 행위가 조금의 제도적 안전장치들을 기반으로 한다면 좋겠다.
박사과정도 직업이라지만
학생이 물위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본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을 다 한 다음에 죽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생들이 부조리한 구조속에서 약자로 존재하여
문제가 많다는 것은 많이 이야기 되지만
또 이걸 대부분 일종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은 하지 않는다.
각자 어디 경찰에라도 신고하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결국 이야기 할 곳은 술자리 밖에 없는것 같다.
언제까지 서로의 농담의 대상으로만 있어야 하는지.

철 없을 땐 (그렇게 어리진 않았지만)
인생에 행복을 찾는게 목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얼마나 모순적이고 어렵고 때론 이기적인 생각인가 하게 될 때가 있다.

말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의 산을 오르고 있기에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저사람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면서
위안이 되고 자극이 되는 사람들이다.
오늘 그런 사람을 오랜만에 둘이나 만났고,
둘 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더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해서 글을 쓴다.

반면 힘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자신은 힘들었다고 합리화 하고 있겠지만, 그들은 옆에서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사람들은 왜 그들과 비교하냐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결국 이들은 나를 더 외롭게 독을 품게 만든다.

내가 아는건 앞으로도 한 동안은 눈사태도 나고 크레바스도 있을테고,
이젠 그만 일어났으면 하는 놀랄 일들이 많을 거라는 것만 안다.
단지 지금 잠깐 안쓰러움을 나누고, 이러한 괴로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것
혹은 스스로 다짐을 위한 것, 언젠가는 조금 이곳의 문화가 달라지길 바라는 것이다.

'열정이 젊은사람의 특권이라, 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한 것 같다.
다 타버린 연탄재처럼 되어 남의 불을 쬐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왜 학계에서 사람들은 잠시동안만 열정을 가지게 되는지
그 열정이 왜 독이 되고 마는지
뭐 매일 같이 느끼는 일이지만
난 그냥 산을 타고 있겠지만 그동안
좀 뭔가 달라졌으면 좋겠다.
2010/12/29 14:00 2010/12/29 14:00
나에게 좋은 보상을 얻고자 하는 욕망인 포지티브 모티베이션 만큼이나
네가티브 모티베이션은 인지과학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어떻게 보면 생명유지랑 관련이 있는 것은 해를 피하고자 하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떠오른 엉뚱한 생각.
가끔 우리는 왜 피해야 할 대상인지 알면서,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그 대상이 잠재적인 해를 줄 수 있는 대상이기는 하되, 치명적이지는 않은 경우인 것 같다.
예를 들면 공포영화를 볼 때, 심장 박동이 솓구치고 아드레 날린이 분비되지만
나는 안전한 스크린 밖에 나와있다는 잠재적인 안전장치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일종의 머리 속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가 그 대상을 이겨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 하여 생각을 하면, 점점 처음에 받았던 충격에서 단련이 되어간다.
그리고 앞으로 행해질 잠재적인 위험도 내가 예상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벌어진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다시 가서 다치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바다에 나간 어린 나비를 그린 시처럼 애초에 정복 할 수 없는 대상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는 그 대단한 잠재적 해를 가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이기고자 하는 욕망, 혹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계속 도전하게 하는 그 것 자체거나
그 욕망을 접어두고 겁쟁이라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상대를 타자로 인정하는 포기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예술이 생겨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을 옮겨 내가 지배할수 있는 캔버스 위에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완성된 작품이 감상자에게 충격을 주며 두려움을 줄 지라도,
화가는 그 대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by Friedrich, Caspar David

오늘 나의 작은 도전에서 나는 또 다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또 다치게 될 줄 알고있었는데 순간적인 만용이었다. 불을 만만하게 본 불나방이었다.



오랜만에 백경을 찬찬히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마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불편함의 대상이 그렇게 아름답고 경외로운 대상이 아님을 깨달아야겠다.
그렇게 조금은 씁쓸해하고 싶어진다.
진짜 두려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2010/12/15 04:40 2010/12/15 04:40

어떻게 사람사는 일에 후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더군다나 후회를 하면서 발전을 해야하겠지 하지만
내년 이맘때에는 올해와 달리 망년회가 아닌 송년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강렬한 의지를 동사에 담아 망년회라 이야기 하고 습쓰레하게 웃었다.
그리고 최근 반복해서 몇년의 연말에 이런 생각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뭔가 신념인지 강박인지를 지킨다고 이렇게 여기 있다는게
사실은 그릇된 이유에서 비롯된게 아닌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은 계속 도피가 된다.
열심히 살아도 결론은 막힌 벽 같은 몇년을 보내며, 나도 삶을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이라는게 어떤 것인지 아직 잘 정의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이루어주되, 전혀 예상할수 없었던 것을 빼앗아가는 악마의 장난 같은 몇 년을 보내며
그리고 또 똑같이 그런걸 느끼고 있는게 보이는 주면 사람들을 보면서

당당하게 조언했던 나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럽고
기억할 때마다 부끄러웠던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였던게
차라리 서로에게 할수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위안일까 싶기도 한다.

열심히 살아도 연말이되어 오랜만에 대하는 사람들을 대하기에 점점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지는거
그렇다고 안으로 파고들면 서로 너무 상처들이 많아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것

누군가를 계속하여 부르고 탓하지만, 혼자 보기 위한 편지를 쓰는 것 처럼
이것도 결국 그냥 그렇게 답답함을 표현하는 나의 방법이 되가는 것 뿐

알았으면 안갔을 길이기에 대안을 생각해 보지만,
내던져진 삶 자체가 알았으면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고,
똑같은 반복이다.

곰처럼 되자고 했다가, 돌이 되고 바위가 되고자 했다가, 나는 그냥 공기나 바람처럼 되고 싶다.
그러면 좀 나을까 싶다.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것 같다.
한 일년만 인간적인 것, 감성적인 것 모두 어디에 넣어두고 잠그는게 나을 것 같다.

2010/12/10 22:11 2010/12/10 22:11

객관적 Today's Ravic

연말분위기의 따듯한 노래와 진저브래드와 크리스마스 블렌드의 스파이시한 커피, 한번도 가져본지 않은 낯설어야 할 Thnaksgiving 분위기가 어떤건지 서서히 젖어가고 있자니 뭐든 잘될지도 모르겠다고 믿고 싶어진다.

연말이 그러라고 있는거지 싶다.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인위적인 부추김,
 
이 번에 뭔가 학회에 갔다가 뭔가 잘될거라는 낙관주의가 삭 벗겨진 시린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너무 시렸는지 돌아갈때 쯤 되니 낙관주의를 찾고있다.
아님 어쩔껀데 라는 뻔뻔함만 생긴 것 같다. 이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전보다는 좀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 날카롭게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후회는 없다. 어떻게 할수있는 삶은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부터 꼬인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기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게 더 기운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게 아니라 결국 난 무기력해지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절박해..

왜 모든것에 이렇게 여유가 없어졌을까 답답함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겠구나
2010/11/24 00:35 2010/11/24 00:35

귀동냥 Today's Ravic

낮에 이 연구 끝나면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할지 고민하는 때가 올거란 싶었다.

그러다가 좀 전에 옆 연구실 사람들이 하는 고민에 귀를 기울였다가
혼자 신경과학적 연구 방법을 들이대보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학위논문에 쫒겨 내것만 내것만.. 하고있지만
졸업 후에 열린마음으로 여기저기를 경청하는 것이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괜한 벌집을 건드린게 아닌가 싶은 이 인지신경과학이
나의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는데 짧은 기간동안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여유가 생길때는 지금과 같은 조바심에 조금은 객관적이 될거란 기대에 졸업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우선 지금은 처음 질문에 답을 잘해보자란 평범한 진리
뭔가 끝을 봐야지 다른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나
2010/10/06 23:25 2010/10/06 23:25

Today's Ravic

화를 내기 전까지 너무 오래 쌓아두고 삭히는 편이라
화가 정말 새어 나오는 시점에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독이 생겨버린다.

그때 그때 말하면 좋을텐데
그 전까지 수만 번의 계산이 오고간다. 그에 대한 공감 그 이후의 나의 반응 예상 등..
내가 감정에 솔직하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여러번 참다가 이상하게 터져버리고 만다.
어떤 느낌이냐하면, 몇 번 여기에 쓰기도 했지만 영화 리볼버에서 제이슨 스타뎀이 레이 리오타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갈다가 막상 만났을 때, 복수를 위해 겉으론 냉정한 척 하지만 속으로 울부짖는 딱 그 씬!
아무튼 이상적인(?) 화는 짧고 강한 느낌으로 터져나오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화가 아니라 뭐랄까
이상한 분위기를 형성 해버리는 무엇이 되어 버려 참 멋대가리가 없어 싫다. 게다가 나를 너무 좀먹는다.
연애를 잘 하려면 잘 싸워야 한다는데, 나 같아도 나같은 스타일이면 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화를 내거나 한 이후에다.
그렇게 마음이 안좋을 수 가 없다.
그 화에 내가 타버리는 것 같다.
갑자기 왜 그렇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지
아마도 나에 대한 반응을 보고 나서 그 표정과 해명을 듣고 공감하는 병이겠지만
참 불편하다.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뭐랄까 마음이 쓰리다.
요즘 의도치 않게 몇 번 그런 일들이 있다.

막상 또 미안한 마음도 쌓아두다 커져서 더 잘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랑 안맞는건 여전해서
나중에 더큰 문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내가 나를 봐도 이 인간 참 피곤하구나 싶을 것 같다.

나이 있으신 분들 예기들어보면 안맞는 건 안맞는데로 인정하고 피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럴 때는 그냥 밭 갈고, 고양이 개랑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인간 세상이 무서운 외계인이 된 기분이랄까

분명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한 인간의 반응이고 필요의 산물일텐데
멋지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진짜 쿨하지 못해 나 스스로 미안하다.

다음에는 내가 이런거에 익숙하지 못하고 먼저 얘기하면서 뭐가 불편한지 바로 말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괜히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 정색하고 얘기하는 분위기는 나도 싫은데.
결론은 어렵다... 사는거...

사회성 고민하고 이러는거 정말 철없어 보이는데
오히려 사회적 문제는 끝까지 힘들다는걸 인정하는게 더 성숙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기엔 나는 너무 경험이 없고, 미성숙하고 그렇다.
2010/10/01 00:22 2010/10/01 00:22

경제적인 면에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편하게 돈 안버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또 언제 오겠나?
어차피 한번 풀리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돈만 벌어야 하고, 남의 돈 받는 일에 대한 압박을 계속 받을텐데
지금도 그렇게 살 필요가 있나
주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하던 것들이지만, 정말 투자한 것 대비 조금이지 않았나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제 커리어를 관리해야 한다는거다.
내가 하고 그것이 경력이 되는 일에 투자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아, 요즘은 해야할 일은 안풀리고, 하루종일 다른 데서 나를 찾는데
이걸 경력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니, 리소스의 재분배가 필요한 거겠지

요즘, 또! 마음의 여유가 없나보다.
내가 가진 있는것 없는것 다시 꺼내서 사용할만한게 없나 생각하기도 한다.
가령 시간, 학생이 가진건 시간밖에 없다 사실
가졌다기 보다는 시간에까지 쫒기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공황이 오고 만다.

그게 비결이었다.
남들은 다 모든걸 포기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냐고 할 때
오히려 더 매달리려고 노력했고
항상 시간을 바라보곤 했다.
일종의 배수진이고 일종의 끝에 다다랐는데
이번에도 또 그럴 수 밖에 없는것 같다.

그 외의 것들, 가령 조금 더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들에 기대 같은 것들은
가진 짐 다 내려놓듯 내려놓는 중이다.

2010/09/17 21:47 2010/09/17 21:47
무엇인가가 없을때 마치 그것만 얻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상 알고 있듯이 그 것을 얻었을때 그것으로부터 받는 만족은 가진 순간부터 그대로 하락한다.
수없이도 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욕심을 부리는 것은 우리가 기대와 충족을 반복하는 생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적 경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엇인가 모르던것을 알게되면, 그것을 표현하고 전하는 것은 또 별개의 것이라
지적 탐구못지않게 끈기와 노력을 요하지만 호기심이 사라진 뒤에 하고자 하는 의지는 많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은 물건과 달리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덫이 있는것 같다.
완전히 아는 것 같아도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표현하려는 과정에서 얘기치 못한 의문을 또 다시 만나게 된다.
나의 경우 이 상태에 도달하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곤 한다.

하나는 또 다른 지적 호기심이 나타나서 탐구해보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는 것이고,
도 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잘못된 일을 하고있었던 것은 아닌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불안과 지침이다.

나를 포함한 주변 대부분의 박사과정들이 이 두가지 상태에서 마치 조울증 처럼 왔다 갔다 하고있는 것 같다 (또 많은시간은 '에휴 몰라'상태로 머무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소유가 주는 만족과 달리, 세상에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어떠한 자원도 사용되지 않고,
하루에도 몇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 거린다.
이러한 조용한 혼돈이 약간 떨어져 보면 재미있는 것 같아서 글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난리를 치고있나 생각해 보면 괜히 인생에 대해 득도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곤한다.

아까는 '에휴 몰라' 생태의 낮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뇌파그래프를 보고 누군가랑 이야기 하다가(누구지?) 지금 연구에서 뭔가 빠뜨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일어났다.
예전에 과학을 안했을 때는 뇌파란, '꿈 꿀 때 좋은 파형이 나와서 가위나 안눌리고 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던 머나먼 개념의 뇌파였는데 이제는 칼라 코딩 되어 시간과 주파수 축으로 흘러가는 개념으로 나를 괴롭히다니 ...
또 다시 빠져들어야 겠다. 천국과 지옥 속으로. 이게 괜한 짓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불안과 함께


그러니까 이런 꿈이나 꾸고 있고 참...

2010/09/15 14:26 2010/09/15 14:26
뭔가 해보고자 앉아 있을때 마다, 배경음악으로 가지고있는 음악을 셔플링하면 뜻밖의 소득을 얻곤한다.
순간 귀에 들리는 이게 뭔가 싶게 좋아서 공부고 뭐고 안될 정도의 곡들을 발견할 때는 꼭 뭔가 다른걸 하려 할 때인거다.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내가 가지고있는 음악 중에 뭔가 좋은게 없나하고' 의도하고 찾을 때는 띄지 않던걸 생각하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무슨 곡을 발견했는데 하고 물어보면 할말이 없는게
누구나 명반으로 꼽는 엘범이긴 하다.
오늘은 갑자기 Keith Jarrett의 Live in Tokyo 앨범도 걸려들었고,
전에 정원형이 추천해서 얻어놓고 안들었던 Avishai Cohen의 Continuo 앨범이 연구의 장막을 뚫고 들어왔다.

 

Rock이나 Classic도 같이 들어있는데 유난히 Jazz가 걸린것은 날씨 탓도 있을테지만
생각해보다, 이게 당연한 결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감을 크게 가지지 않고 끝까지 음악을 듣게 되는 경우가 사실 얼마 없는거다.
그러나 음악을 발견하려면 그렇게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음악을 통째로 좋아하게되기 전까지
음악은 일부분 클라이막스나 혹은 재즈나 클래식의 경우 특별하게 와닫는 악장때문에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곡 전체를 흥얼가리게 될 정도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무래도 컴퓨터로 듣다보니
날을 세워 오류라도 잡아내듯 듣다가
초반의 몇초안에 마음에 든다는 판단이 안서면 듣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잦았던 것이다.

너드적 행위



2010/08/30 00:14 2010/08/30 00:14

휴가 후유증 Today's Ravic

마음을 다잡기엔 일상이 편안하다.
오랫동안 휴가를 벼르다가 며칠 다르게 지내고 오니 오히려 일상이 왜이리 어색한지
며칠 해운대를 다녀왔다고 갔다온 기간 보다 길게 헤메고있다.
며칠 또 나를 고장난 오토바이같이 털털털털~부르르르... 공회전 시키게 생겼다.
2010/08/26 15:58 2010/08/26 15:58
Surrealism, 이것보다 Realism의 반대에 서있기도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때론 초현실은 추상(Abstract)보다 더 현실에서 지독히도 도망가고 싶을 때 만들어 지는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추상은 또다른 재현 (respresentation)이 아닐까 싶은 것이,
내 속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 지독한 묘사 같은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으로 통하는 열쇠만 찾으면 지적인 평화가 찾아온다.

가끔 초현실주의 작품을 접하게 될 때, 묘한 전율이 흐른다.
이게 로트레아몽이 말한 제봉틀 위의 박쥐 우산일까..
이 아름다움은 독특하다.
현실적 제약이 없어 무한의 가능성이 있기에 (제봉틀과 박쥐 우산이 결합했는데 뭐가 불가능 할까?),
가장 시적인 결합을 찾아 내기란 사실 사막의 모래에서 무언갈 찾는 기분일게다.
그런데 어떠한 영감에 의해 (그것이 순간적 놓치기 쉬운 독특한 감정이라도)
작가는 순간 현실에서 도망가서 저 너머의 무언갈 보고 독특한 감성을 이끌어 온다.

아! 대체 이 우아하고도 슬픈 감정은 무엇인가?
낯섬에 놀라 감상자는 당혹하며,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독과 같아 성분을 모르기에 더욱 빠져든다.
감정적 충족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적인 이해는 작가가 대체 어떠한 경험을 했길래 저 너머의 세계로 도망갔는지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경험에서 이 세계를 져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흔적만이 남은 그의 슬픔만을 예상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혼자 넘어가 버렸다.

나는, 그 건너지 못할 강의 건너편에서, 저 너머의 노래를 듣고 홀려있는 것이다.
그 뭔가 모를 애뜻함, 너무나도 가고싶지만 그러나 건너갈수 없는 곳, 그래서 나도 슬프다.
이는, 뭔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묘한 애착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그 미묘한 감정이 계속 나를 중독시키고 간지럽힌다.
뭔가 알 것 같이 속삭이지만 늪처럼 빠져들고
알고보면 나는 미궁 속에서 정신을 잃고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좋아서, 혹은 미쳐 날뛰는 비명을 질러대면서 말이다.
2010/08/06 04:45 2010/08/06 04:45

궤적과 접점 Today's Ravic

사람을 만날 때 한결 같았으면 좋겠다, 혹은 조금은 그래야 겠다고 생각한다.
무슨말인가 하면

처음 소개 받았을 때도, 그리고 나중에 언제가 될지 모르며 헤어질 때도
항상 같은 모습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도 만났고 내일도 만날 것 처럼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보다 사람들은 더 많이 만났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더욱 불편해 지기만한다.
신경써야 하는 긴장감도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기만하다.

그리고 헤어짐에도 익숙해 지면서
언젠가 부턴 헤어짐을 대비하고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프로젝트성 만남이라 해도 만남은 급작스럽고, 더 이상 헤어짐은 갑자기 일어나는 사고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다른 시공간의 우연한 접점에 있는것 뿐이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항상 같은 사람을 만나도
나의 상태와 상대의 상태에 따라
나는 내가 알고있던 사람이라 착각하는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헤어짐도 마찬가지,
결국 헤어지는 것은 익숙함이란 것에 젖어있는 나와 헤어지는 것이다.
헤어질 때는 나중에 만나자며 안타까워 하지만, 만나보면 오히려 과거를 더욱 그리워 하게 하는
변화에 더욱 익숙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게만되는 것만 늘어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매일 아침 계속 하루가 default상태로 반복되는 영화 속같이
매일은 반복되고 나는 그 궤도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사실 한결같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흐르는 물을 잡고 머무르라고 종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변화를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궤적을 그리고 있음을 믿어야 하지 않겠나? 다들 또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
관심가는 작품이 있어서 작가의 정보를 모으던 중, 깜짝 놀랄만하게 비슷한 생각을 했길래
그의 말을 옮겨적는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공간은 당신 앞에서 끊임없이 바뀐다. 따라서 이 세상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1초 전의 당신의 모습과 1초 후의 당신의 모습은 분명히 다르다. 당신은 단 한순간도 단 한곳에 머물지 않는 공기로 가득한 공간의 속성을 바꿀 수 있는가. 혹시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당신의 경험에 의한 선입견이 아닌가.’ - Roni Horn

사용자 삽입 이미지

Roni Horn - Untitled (kitty cat), 2000



 

2010/08/02 00:48 2010/08/02 00:48
태그 :

간밤에 악몽에 시달리며 3번쯤 깬 듯하다.
하여 아침에 일어났을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사소하지만 그날 아침의 무드를 결정하는 꿈,

'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할 수 없잖아', 하는 생각도 들다가
'깨어있을 때라고 일어나는 일들을 마음대로 조정 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꿈은 가끔, 실제와 같이 사고 방식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생생한 경험이다.
실제로는 꿈꾸는 자가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는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것, 나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해 온 것 같다.

오히려 삶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꿈은(악몽의 경우) 수동적으로 당한 느낌이 드는
할 수 있는게 없는 순수한 피해였다고 생각하게 되는게 아닐까,
그래서 보험이 되지도 않지만 쉽게 그랬나보다 하게 되는걸까 싶다.

몽롱한 기분에서, 꿈을 화두로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내 꿈이라는 것에서 '내'는 소유격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나의 기억과 내가 한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내가 만든 삶을 프로그램으로 실행되고 있는 결과물인 것 같으니
어느정도 본인에게 책임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0/07/22 10:20 2010/07/22 10:20

**영화이야기가 있긴하나 스포일러 거의 없음,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게 아님**

요즘 좀 웃고 싶어서 Comedy장르로 되어있는 영화를 찾다가
+ 그러면서 그저 막 웃기는것에는 웃을 수 없는 질환(질환이 분명해 아님 저주거나!)을 가진 것을 탓하며
엄선해서 나름 보게된 Adams Aebler (아마도 Danish인듯하다. Adam's Apples이란 의미)
http://www.imdb.com/title/tt0418455/

장르를 보면 Comedy+Crime에 유럽 영화이다.
처음엔 이 정보만 보고, 또 하나의 Hot Fuzz (http://www.imdb.com/title/tt0425112/)
'아! Simon Pegg처럼만 웃겨주길!'
를 발견한게 아닌가 기대를 했었는데
결론적으로 음... Black comedy고, Drama에 가깝다.

예상과 달랐지만 괞찮은 부분이 상당히 있는 영화였다.
아쉬운 점으로, 보편적인 이야기로 세련되게 표현 할 수 있었는데
욥기를 다루는 부분에 너무 종교적 색체가 들어간 연출이 몇 분정도 있는게 아쉬웠고,
과도한 음악이 좀 거슬리는 신이 있기는 했는데 뭐, 그 나름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이 질문을 하게되었다.
진실을 까발리는것과 적당히 좋은 대로 좋은 것의 대립,
보편적이게도 진실은 대부분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진 않을 수 있다.
주인공 A는 진실에서 도망가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에 사람들이 고통받자 웃는 장면이 있다.
나에게 이 웃음은 목표를 성취한데 대한, 단순한 반응이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진실을 알고 삶이주는 고통, 드디어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데서 오는
자조적인 인간의 웃음이랄까

그런데 나는 이게 조금은 과학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한다.
과학자들은 진실을 알리는것 자체를 목적으로 가지고 사실 그것만이 허락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진실을 추구했다는 것에 존재감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드이 믿고있는 것에 태클을 걸게 될 때가 많다.

예를들면 John Brockman의 '위험한 생각들'이라는 책의 대부분은 과학이 밝혔으나
사람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위험한 생각들이 많이 있음을 알려준다.
http://edge.org/ 의 연중 시리즈를 바탕으로하여 만들어진 이 책은 이듬해에
'낙관적 생각들'이 나와 과학이 주는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긴 했으나
개인적으로 이 두책 중, 위험한 생각은 대부분 신경과학의 지식이 제공하고,
낙관적 생각은 IT가 제공하고 있다는데서 일종의 Black Comedy를 느꼈었다.
(그러니 SF속 사람이 뇌의 비합리성에 깜짝 놀라 인공 몸으로 대체하고 싶어하지-_-;;
나는, 뇌의 비합리성이 왠지 더 합리적인 것이 혹은 초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런데, 나는 1.신경과학과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과일과 같은
2. 예술, 아름다움을 같이 연구한다고 두 공을 들고 저글링 하고있단 말이다!
이 둘이 언젠간 부딛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꽈당!
Science는 원래 가위라는 단어에서 나왔단다.
조금이라도 다른것에 집중하고 구분하는게 본질인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뭐든 다 따듯하게 덮어줄 수 있는 털실로 담요를 기워서라도 덮고,
하늘을 가리고 싶어하는게 많을 것이다.
'이거 참, 영화보다가 너무 멀리갔군!' 이란 생각이 들어
당시에는 물론 길게 생각을 안하게 되었는데

저녁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스티븐 핑커와 다니엘 레비틴의 논쟁이 이미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둘 다 '왜 인간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않고, 실리적이지도 않은 '음악'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에 대해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하는 인지신경과학자들이다.
언어와 인지에 뿌리를 둔 순수 과학자인 핑커는 '우연히 만들어진 진화의 부산물'로,
레비틴은 물론 대가 과학자이지만, 음악가 출신답게 '그럴리 없어, 인간은 원래 음악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가능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날을 갈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되었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멋진 가설이라도 하나 주장할 내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과학자의 로또스러운 꿈을 크게 꾸게된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꾼다는게, 진실을 밝힌 후에 문제가 되는
'그 웃음을 짓는 행위'를 만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하네 ... ...

2010/07/09 23:52 2010/07/09 23:52

단것과 Danger Today's Ravic

얼마 전에 처음 듣는 노래임이 분명한 노래를 듣다가 '분명 어디서 들었는데'싶어서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이 이 노래를 따온게 아닌가 싶다.
표절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만, 판결이 없으면 그런 표현은 쓰면 안된단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1. 대부분 노래들이 거의 표절 의혹이 있으며, 멜로디 라인이 비슷하다 수준이 아니라 파일을 가져다 붙여놓은 수준이다. 대범하다. 템포만 조금 늘어지거나 빨라지는 수준이다. (디지털 미학?).

2. 몇몇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두 곡을 비교한 동영상이 상당히 많고 문제를 지적하고있으나
대부분은 '누가 만들었든 지금 내 귀에 듣기 좋은게 더 좋다'라는 판단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알고있음에도 요즘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한 나를 오히려 탓한다 (아, 미안하다고...ㅋ).
그런데 원곡이랑 경쟁하면 당연히 뒤에 만든게 더 보기에는(듣기에는) 좋겠지!

3. 그래서 법가지 뒤져보게 되었는데, 법적으로 이게 원작자가 알고 소송을 걸기전까지는 문제되지 않는다며,
문제가 될 경우 보통 합의를 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 노래를 좋아할 때는 표절 작곡가의 오리지널 카피로 알고있다가 몇 년지나 문제가 조용히 터지면 저작권이 은근슬쩍 넘어가있기도 하단다.

미술계에서도 이런 이슈가 몇몇 되어왔는데, 창조적 차용을 어디까지 볼것인지에 대해 따라붙는 논의자체가 있었고
결국 이런 논의와 담론들이 궁극적으로는 예술이 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하게 하지 않았나?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는 방식 아닐까? 하는 반박이 있다면
Remix등의 창조방식에 대해 말하는게 아니라
아무튼 내가 생각하고 싶은 문제는 예술가들의 마음이다.
자기 속으로는 알 것 아닌가, 이 작업이 나에게 어떤 작업이었는지!

작년 EBS, 다큐멘터리에서 본 Girl tolk는 Remix전문 음악가였고, 자신이 어떤 노래에서 일정부분을 따와 새로운 노래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신나게 보여줬던 생각이 난다. 물론 저작권때문에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의 표정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난 예술을 하고있거든요!' 하는 표정이 있다.

예술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게 그 건데, 그걸 포기했을 때,
그러니까 오로지 정말 밥벌이로 음악을 하고있을 때 (그러니 그렇게 대범한게 아닌가!)
언젠간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작곡가가 되기까지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고 열정도 가지고있었을 사람들이기에
누군가의 노래를 그렇게 대범하게 따오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처절할까 하는 생각이든다.

예전에는 아무래 대중음악이라도 이게 누구의 영향에 의해 이렇게 발전된 연주방식, 멜로디, 창법, 구성인지..
따와도 얼마나 창의적으로 따왔는지 알면 감탄하고 경탄 할 수 있었고
많은 비평가들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자랑스럽게 라디오등에서 했으며
그래서 음악이 역사를 가지고 계속하여, 예술이 될 수 있었으며,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자본주의, 상업예술, 순수예술, 저작권 법 각각 나름 의미를 가지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Naive하지!) 그들이 만드는 '관계'가 이렇게 추악할 수 밖에 없이 얽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아름다움이라는게, 생각보다 싸구려혹은 가짜 마약 같을 때가 많다.
의식 좀 가지자! 라고 쓰고 싶긴한데 의식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나도 정의를 못하겠다.
결국, 한발 물러서서 '고민이라도 하는 척 해보자'하고 기가 죽어 얘기할 수 밖에 없다.
알면 알수록 회의론자가 되는게 많다.

'네, 그거 다 죽은 나비에요.'

2010/07/09 23:10 2010/07/09 23:10

요즘 뉴미디어에 대한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있을까?

오늘, 뇌과학에서 잠시 벗어나, 디지털 컨버젼스 기술의 발전전망과 관련된 워크샵에 참석했다.
여긴 보령 대천 한화 리조트인데, 날씨가 안좋아서 회의 하기 좋은(?) 날이다.
대부분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대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한 이런 워크샵은
발표자와 청자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니까 이번 특강은 애플의 얼리어답터가
기술발전에 굳이 개인적으로는 관심이 없어보이지만,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기 위해 뒤늦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회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 기술의 에반젤리스트가 나와서, 이 기술이 이렇게 좋아!
우리 삶의 뭐가 바뀌었고, 뭐가 바뀔꺼야! 의 Frame으로 설명된다.
이 기술을 먼저 써보는 것에 가치를 찾는 그 발표자의 마음도 이해되면서
동시에 최신 기술의 의미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청자들은
(물론 기술을 늦게 접하는 것보다 아예 고집있게 안한것으로 하겠어라는 옹고집 심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네 밥줄이니 좋다고 이야기 하겠지!)' 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이후 미디어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이야기 하는 방식이 생겨버린듯 한다.
화자도 청자도 정형화 되어버린 자리의 느낌이 강하다.

결국 질문도 뻔해져서,
그럼 미래의 아이폰은 뭐가 될거라 예상하는가?
라는 뻔한 질문도 매번 나오게 되는데 (누가 그 답을 알며, 안다고 해도 공짜로 가르쳐 줄텐가?)
대부분 마지막에 간단히 이야기 하는 자리라
인간의 내제적인 욕구를 표출하는데 충실한 기술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대답이 너무 무책임한 것 같다.
너무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이런 전자기기를 선택하는 자,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User가 중요시 되는건 이해되는데
기본적으로 Media를 이해하려면 청자의 Power또한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Interaction이 이렇게 실시간으로 오고가는데!
그들의 욕구가 어떻게 이 미디어를 통해 실현될지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다는걸 놓치고 있어 보인다.

미디어 사용자이론에서 보면 사실 청자에게 어떻게 얼마나 정확히 전달되는가도 중요한 문제인데
요즘 청자들은 똑똑해 지고있다. 수신 또한 선택인 것이다.
twitter에서 follow도 unfollow도 청자의 몫이다.

어떻게 청자들이 만족하는 미디어가 될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본을 가진 누군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크게 하게 해주는 미디어라면
즉, 인간의 (아주 저질적 일수도 있는) 내제적 욕구를 표출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결국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점이 많이 간과 된게 아닌가 싶다.


+ 남들은 통영도 대천도 좋다고 하는데, 나는 갈때마다 안개 비속에 파도소리만 들리는 바다만 보고(사실상 듣고)온다.

2010/07/01 15:23 2010/07/01 15:23

재정비 Today's Ravic

그러니까 5월, 박사논문 주제 발표를 위해 한달동안 열심히 같이 동거동락하며 고생하던, 기숙사 방 컴퓨터가 발표하고 온 날 (신통하게도) 죽어버렸다.

기계한테 고맙다고 이야기 해도 되나? 그런 심정이다.

하드를 꺼내들고, 자전거 앰뷸런스를 타고, 연구실 컴퓨터를 인큐베이터 삼아 살려놓았다.

그리고 6월에, 군 훈련에 다녀온 후, 이제 포맷까지 다 해서 깨끗하게 살아났다.

또한 오늘, 벼르고 벼르던 키보드까지 바꾸고 나니 기분이 좋다.

매우 좋다!

매너리즘이고 뭐고, 연구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출발선에 놔준다는 말, 항상 맞다고 생각하며 살고있는데

이 정도면 적은 노력에 최대 만족인 샘이다.

2010/06/26 22:26 2010/06/26 22:26

지금은 없는 나의 아지트 카페에서 옆에 앉은 분과, 나와 다른 예술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다 생각해 본 점이있다.
예술성을 위해 Technical skill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경우, Technical skill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도 그랬던 경험이 있고, 오히려 교육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경우에 더욱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품이 나와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방 분은 뛰어난 Technical skill을 기본 바탕으로 해야 진정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예술성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논쟁은 결국 예술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도달하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개인적인 예술교육 경험에서 이러한 주장이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의 차이에 재미있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예술은 지극히 시각적인 좁게는 미술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 분은 음악을한 사람으로 바이올린 전공자에 지금도 사람들에게 레슨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이 고민이 구체적인 문제가 되어 나의 머리 속을 돌아다니고있다.
취미적인 고민이 아니라, 이 궁금했던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보고 싶고, 논문에 반영하고 싶은데
시간적 여유가 많질 않아, 7월에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반면, 아직 구체적인 실험 계획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극히 간단한 모델로 이야기를 하자면
작품으로 보고 판단하는 미적 가치가 수학적으로 Origianality와 Technical skill에 대한 판단과 관련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우선은 Technical skill에 대한 판단과 관련된 뇌의 반응을 아는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Y(Aesthetic appraisal) = aX2(originality decision making) + bX2(technical skill disicion making) + c
뭐 이런다 친다면 a,b가 얼마나 되는지, X1,2가 Brain activity로 계산될 수 있는지 궁금한거다.

우선 실험이기때문에 다른 조건을 Control해야 하는데, Origianlity (Creativity)의 축을 배제하고 Technical skill의 차이를 다양하게 반영하는 자극을 만들어 낸다는게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뇌를 가지고 작품을 감상할때 이것을 배제한다는게, 애초에 가능하긴 한거야?)

누구나 쉽게 이게 잘 그린그림이지, 이게 못 그린 그림이야 라고 쉽게 판단을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어떤 과정을 거치는건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자니 애매한 것이다.
이 과정에 이르니,
얼마전부터 나는 어떤 습작도 예술로 보이고 어떤 명작도 습작으로 보이고 있으니
나의 뇌만 또 미의 무게에 찌들어 고생이다.
대체 Technical skill이 뛰어난 작품이라는게 시각예술에서 무엇이지?
왠지 음악으로는 실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만인가?
직관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어려운 법인가 보다.

또 이러한 찬단이 개인적인 예술적 가치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것인지 알아보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험을 해야 하는건지!!

2010/06/12 16:17 2010/06/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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